김창훈 함평문화원장이 1980년 5월 22일 함평공원에서 열린 ‘함평 군민궐기대회’와 관련해 “당시 궐기대회는 관 주도가 아니라 함평 청년들과 군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사실”이라고 밝혔다.
김 원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기록원 영구보존 자료와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를 근거로 제시하며, 최근 일부에서 제기된 ‘관 주도 집회’ 주장과 ‘함평 5·18 왜곡’ 논란을 정면 반박했다.
김 원장은 먼저 “함평문화원장으로서 군민과 언론인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며 “2016년 제11대 함평문화원장으로 취임한 뒤 현재 13대 원장으로 10년째 일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21년 제41회 함평군 5·18 기념식 이후 아주 사소한 일로 군수 측근들로부터 모략과 비난을 받아야 했다”며 “그 결과 함평문화원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았고, 제 집을 담보로 빚을 내 문화원을 운영해 왔다”고 밝혔다.
현재 함평문화원은 함평군의 보조금 교부 취소 결정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며, 오는 7월 9일 2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의 핵심은 개인적 억울함이 아니라 “1980년 함평 5월 항쟁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에 따르면 함평공원 군민궐기대회는 1980년 5월 21일 광주에서 온 학생들이 트럭을 타고 함평에 들어와 “광주 시민을 살려주십시오”,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외친 장면을 지역 청년들이 목격하면서 시작됐다.
그날 밤 김 원장을 비롯한 함평 청년 20여 명은 함평광명중앙교회 숙직실에 모였고, 다음 날인 5월 22일 함평 장날에 맞춰 광주 상황을 알리는 군민궐기대회를 열기로 뜻을 모았다.
당초 20여 명이 함께하기로 했지만, 실제 행사 준비 당일 화선다방에 모인 인원은 김창훈 원장과 모연남, 김상석 씨 등 5~6명 정도였다고 김 원장은 설명했다.
이들은 결의문을 만들고 구호를 준비했으며, 당시 광주에서 계엄군의 만행을 직접 목격한 뒤 차량이 없어 걸어서 함평까지 온 고 김철수 씨의 현장 증언도 군민들에게 알리기로 했다.
김 원장은 “문제는 군민들에게 궐기대회 개최 사실을 알릴 방법이 없었다는 점”이라며 “그래서 읍사무소 방송시설 사용을 요청했고 어렵게 허락을 받아 방송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현장에는 정찬동 어르신이 있었고, 정 어르신은 “광주 시민을 살리자는 함평 청년들의 외침이고 군민의 마음이니 읍장도 함께해야 한다”고 권유했다고 김 원장은 회고했다.
그 결과 김하진 당시 함평읍장이 행사 말미에 참석해 만세삼창을 하게 됐다는 것이 김 원장의 설명이다.
김 원장은 “이 사실을 두고 일부 세력이 군수와 경찰서장이 공모한 관 주도 집회라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라며 “그날의 궐기대회는 순수한 민간 주도의 함평 군민 행사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김 원장은 “그때는 교통과 언론이 모두 차단된 암흑 같은 시기였다”며 “함평 경찰 역시 광주 시위 진압을 위해 차출돼 있었고, 군수나 경찰서장이 집회를 지시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관 주도였다면 군수가 지시하면 될 일이지, 왜 청년들이 방송을 요청하고 공원에 군민을 모았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원장은 이날 국가기록원 자료도 공개했다.
그는 “전라남도 합동수사단이 작성한 훈방 대상자 620명 명단 가운데 함평 관련 기록에 제 이름이 있다”며 “김창훈, 당시 28세, 대동중학교 교사, 함평군 기각리 거주자로 기록돼 있다”고 밝혔다.
해당 기록에는 김 원장이 1980년 5월 22일 오전 9시 30분 함평읍사무소 앞 화선다실에서 군민궐기대회를 계획하고, 결의문 500매를 작성해 군중에게 배포한 혐의로 조사받은 내용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이 기록은 제가 당시 궐기대회를 주도했다는 국가기록원의 공식 자료”라며 “경찰 조사 과정에서 폭언과 폭행, 압박을 겪었고 한 달 가까이 곤욕을 치렀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2024년 6월 24일 발간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도 제시했다.
김 원장은 “진상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 2권 768쪽에는 1980년 5월 22일 함평 장날 김창훈 등이 주도해 2,300명의 군민이 참여한 시민궐기대회가 함평공원에서 열렸다고 기록돼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는 김창훈이 사회를 맡았고, 현장에서 “전두환 물러가라”, “계엄령 해제하라”는 구호가 나왔으며, 궐기대회 이후 일부 군민이 시내로 행진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국가기관이 공식 발간한 최종 보고서에 명시된 내용을 어떻게 거짓이라고 할 수 있느냐”며 “함평공원 궐기대회는 광주 5·18과 분명히 연결된 함평 군민의 민주화운동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일부 단체와 인사들이 이상익 군수 당선인이 자신을 인수위원으로 위촉한 것을 문제 삼으며 사퇴를 요구한 데 대해서도 강한 유감을 표했다.
김 원장은 “역사적 사실이 명백한데도 일부 세력이 ‘5·18을 거짓말하는 사람을 인수위원으로 위촉했다’며 군수 당선인까지 압박하고 있다”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이 더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아 참아왔지만, 왜곡이 극에 달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역사와 5·18 영령들 앞에 떳떳하다”며 “함평공원 군민궐기대회는 김창훈 개인의 명예 문제가 아니라 함평 군민 전체의 5월 역사를 바로 세우는 문제”라고 밝혔다.
김 원장은 끝으로 “저의 주장은 분명한 역사 기록과 국가기관의 공식 자료에 근거한 것”이라며 “다른 입장이 있다면 언제든 이의를 제기하고 질문해 달라. 당당히 답변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함평지역 5·18 역사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국가기록원 자료와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를 중심으로 다시 검증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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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훈 함평문화원장이 1980년 5월 22일 함평공원에서 열린 ‘함평 군민궐기대회’와 관련해 “당시 궐기대회는 관 주도가 아니라 함평 청년들과 군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사실”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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