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반도체는 선거 구호가 아니다…광양은 동부권 공동전략에 답해야 한다

전남 동부권 산업대전환 포럼서 정인화 시장, 세풍·해룡 210만 평 활용론과 율촌2산단 대안론 병행…전남도는 이미 해룡·세풍 중심의 신속 추진 필요성을 공개 언급

이동구 선임기자 | 기사입력 2026/03/13 [06:34]

[기자수첩]반도체는 선거 구호가 아니다…광양은 동부권 공동전략에 답해야 한다

전남 동부권 산업대전환 포럼서 정인화 시장, 세풍·해룡 210만 평 활용론과 율촌2산단 대안론 병행…전남도는 이미 해룡·세풍 중심의 신속 추진 필요성을 공개 언급

이동구 선임기자 | 입력 : 2026/03/13 [06:34]

 

반도체는 ‘고집’으로 오는 산업이 아니다

 

광양 정치권이 또다시 반도체 입지를 둘러싸고 흔들리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하다. 반도체 산업을 광양의 미래 먹거리로 키우자는 데 이견은 없는데, 그 길을 현실로 갈 것인지, 정치의 언어로 갈 것인지가 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 NBN CURRENT TV 이동구 대표     ©

 

이 갈림길에서 정인화 광양시장의 최근 메시지는 분명 일부 수정됐지만, 여전히 불안한 대목을 남기고 있다. 광양시가 3월 11일 시민홀에서 연 ‘전남 동부권 산업대전환 혁신 포럼’은 철강·항만 중심 구조 위에 AI, 반도체, 이차전지를 얹는 미래 산업 구상을 논의하는 자리였고, 이 자리에서 광양시와 한국생성AI파운데이션(KGAF) 간 협력 MOU도 체결됐다. 포럼 자체는 분명 의미 있었다.

 

정 시장은 이 포럼에서 세풍·해룡 일대 미래첨단특화산업단지를 210만 평 규모로 확대하는 구상 속에서 약 100만 평은 이차전지, 약 110만 평은 반도체로 활용하는 방안을 언급했다. 이 발언만 놓고 보면, 기존의 ‘율촌2·3산단 중심론’에서 한발 물러나 전남도와 동부권 전체 구도에 맞추는 듯한 인상을 준다. 실제로 최근 광양시 안팎에서 반도체 유치 논의의 무게중심은 세풍·해룡과 RE100 기반 산업단지 쪽으로 이동해 왔다. 그 자체로는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변화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정 시장이 같은 자리와 그 전후 메시지에서 다시 율촌2산단 활용 가능성을 대안으로 열어뒀다는 점이다. 이미 정 시장은 지난 2월 순천 해룡·광양 세풍 대신 율촌2산단을 반도체 입지로 거론하며 공개적으로 역제안한 바 있다.

 

당시 논쟁은 단순한 지역 간 기싸움이 아니었다. 반도체 산업이 요구하는 것은 선언이 아니라 속도, 인프라, 행정 실행력인데, 율촌2산단은 조기 조성 가능성과 즉시성 측면에서 현실적 한계가 크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같은 구상이 반복된다면 시민들이 “이게 산업 전략인가, 선거 전략인가”라고 묻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더 중요한 대목은 전남도의 공식적 방향이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2월 행정통합 타운홀 미팅에서 “미래 첨단 국가산단이 있는데 (율촌에) 반도체 산단을 만들자는데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광양·순천에 예정된 국가산단을 210만~220만 평으로 확대해 그곳을 신속히 조성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강기정 광주시장도 동부권의 물·전력·송배선로 여건을 언급하며 해룡·세풍과 율촌 간 이견은 조정의 문제라고 했지만, 전체 흐름상 핵심은 이미 조성 또는 추진이 가시화된 축을 중심으로 속도를 내야 한다는 데 있었다. 즉, 율촌2산단을 앞세운 단독 드라이브보다 해룡·세풍 중심의 공동 추진이 훨씬 현실적이라는 판단이 공개 석상에서 이미 제시된 셈이다.

 

실제 사업 진행 상황도 이를 뒷받침한다.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은 3월 5일 세풍 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 착공식을 열고 133만㎡, 약 40만 평 규모의 공영개발에 들어갔다. 총사업비는 3천813억 원, 준공 목표는 2030년이다. 이 산단은 RE100 이행이 가능한 친환경 산단을 지향하며 반도체, 미래모빌리티, 첨단 기능성 소재 등을 전략 유치 업종으로 제시했다.

 

다시 말해 세풍은 말이 아니라 이미 삽이 들어간 곳이다. 반도체 유치 경쟁이 용인·평택 같은 기존 거점과의 속도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동부권이 붙들어야 할 곳은 ‘가능성을 말하는 부지’가 아니라 ‘실행이 시작된 부지’다.

 

반도체 산업은 어느 한 도시가 현수막 몇 장 걸고, 정치인이 의지 몇 마디 밝힌다고 오는 산업이 아니다. 토지, 전력, 용수, 교통망, 인재 공급, 관련 기업 집적, 행정 지원, 규제 정비가 한꺼번에 맞물려야 한다. 그래서 더더욱 광양 단독, 순천 단독, 여수 단독으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전남 동부권이 하나의 산업권역으로 움직여야 하고, 오는 7월 출범을 앞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체제 역시 이런 초광역 산업 재편을 전제로 삼고 있다. 광양시가 철강과 항만을 갖고 있다면, 순천은 배후 공간과 도시 기능을, 여수는 에너지와 화학 산업 기반을 갖고 있다. 반도체는 바로 이 자산들을 묶는 공동 프로젝트가 될 때 비로소 경쟁력을 가진다.

 

이 지점에서 시민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희망’이 아니라 ‘희망고문’이다. AI도 하겠다, 이차전지도 키우겠다, 반도체도 유치하겠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어떤 부지에서, 어떤 시간표로, 누구와 함께 해낼 것인가다.

 

만약 이미 전남도가 방향을 잡고 있고, 세풍 산단이 착공에 들어갔고, 해룡·세풍을 묶는 RE100 전략이 동부권 공동과제로 부상한 상황인데도 다시 율촌2산단을 전면에 내세운다면 그것은 전략의 확장이 아니라 초점의 분산이 될 수 있다. 산업은 메시지가 많을수록 강해지는 게 아니라, 선택과 집중이 분명할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정인화 시장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반도체 의지’를 더 크게 말하는 일이 아니다. 이미 시민은 그 의지를 알고 있다. 필요한 것은 그 의지를 어디에 실을지 분명히 정하는 일이다. 세풍·해룡 중심의 210만 평 구상에 힘을 실을 것인지, 아니면 현실성 논란이 큰 율촌2산단 카드를 선거 국면마다 다시 흔들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두 언어를 함께 쓰는 순간, 행정의 메시지는 설득력을 잃는다. 시민은 산업정책에서 유연함은 반기지만, 모순은 용납하지 않는다.

 

광양은 포스코와 광양항이라는, 다른 도시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산업 기반을 가진 도시다. 그래서 더 신중해야 한다. 잘못된 선택 하나가 시민 기대를 몇 년씩 묶어둘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광양의 미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미래는 ‘광양 혼자’의 미래가 아니라 ‘동부권이 함께 만드는 미래’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 사실을 외면한 채 독자 노선만 앞세운다면, 남는 것은 박수보다 피로감이고 기대보다 냉소다.

 

정치가 산업을 앞서면 산업은 도망간다. 지금 광양에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정확한 방향이다. 반도체 유치는 자존심 경쟁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이제는 누가 먼저 말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먼저 현실 위에 올려놓느냐를 따져야 한다. 시민은 더 이상 구호를 먹고 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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