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믿음이라는 이름의 부메랑, 여수 사칭 사기가 남긴 숙제

공무원이라는 '가면', 신뢰라는 '미끼'...'빌드업' 수법에 무너진 소상공인의 선한 마음

이동구 선임기자 | 기사입력 2026/01/28 [14:04]

[칼럼] 믿음이라는 이름의 부메랑, 여수 사칭 사기가 남긴 숙제

공무원이라는 '가면', 신뢰라는 '미끼'...'빌드업' 수법에 무너진 소상공인의 선한 마음

이동구 선임기자 | 입력 : 2026/01/28 [14:04]

우리가 알던 사기는 죽었다 과거의 사기가 조잡한 가면극이었다면, 최근 여수에서 발생한 공무원 사칭 사건은 정교하게 연출된 '장기 공연'에 가깝습니다. 

▲ 이동구 대표  ©

 

예전엔 위조 명함 한 장 내밀고 큰 건을 노리는 ‘단기전’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몇 달간 편의점 음료수를 사고 안부를 물으며 ‘단골’이 된 뒤에야 본색을 드러냅니다. 과연 우리는 낯선 이의 친절을 어디까지 의심하며 살아야 할까요?

 

객관적 맥락에서 보면 '빌드업'이 된 범죄, '다운'된 공동체 최근 여수시 소상공인들을 울린 이른바 ‘빌드업형’ 수법은 사회적 자본인 ‘신뢰’를 가로채는 행위입니다. 회계과 직원을 사칭해 1억 원을 편취한 사례나, 문화예술과 직원을 사칭해 600만 원의 피해를 입힌 사례 모두 ‘유대감’이 범죄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는 지방자치 공동체가 가진 특유의 끈끈함을 범죄자가 역이용한 것으로, 범죄의 화살촉이 시스템의 빈틈이 아닌 인간적인 정(情)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악의적입니다.

 

제세동기로 살리려던 건 무엇이었나 범인은 심장을 살리는 기계인 ‘제세동기’를 미끼로 삼았지만, 역설적으로 지역 사회의 따뜻한 심장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냉정히 따져보면 시청 직원이 식당 주인에게 1억 원 상당의 기계 대리 구매를 부탁한다는 설정은 코미디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친분’이라는 필터를 끼우는 순간 상식은 마비되고 비극이 시작됩니다. 공무원이 개인 계좌로 송금을 요구하는 것은, 마치 고양이가 생선 가게 주인의 노후를 걱정해 주는 것만큼이나 앞뒤가 맞지 않는 일임을 우리는 뒤늦게 깨닫습니다.

 

의심은 차갑게, 마음은 뜨겁게 여수시는 현재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홍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후유증은 시민들이 앞으로 만날 진짜 공무원, 진짜 이웃조차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되는 ‘불신의 비용’입니다. 범죄는 처벌하면 그만이지만, 멍든 민심을 치유하는 데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1억 원이라는 거금뿐만이 아닙니다. 타인의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일 수 있는 ‘안전한 다정함’을 지켜내는 일이 더 시급해 보입니다. 의심은 시스템에 맡기고, 믿음은 검증된 절차 위에서만 꽃피우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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