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어지러운 정치 상황에서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민중 봉기가 일어 났다.
이승만 정부는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4연대를 진압군으로 파견하기로 했다. 그러나 제14연대 군인들은 1948년 10월 19일 제주도민 진압 출동을 거부하며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승만 정권은 이사건을 ‘여순반란사건’이라 부르고,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여 강력한 반공국가를 구축했다.
여‧순 사건은 토벌 과정에서 좌우 대립으로 변질되고, 패퇴한 군인들이 광양 백운산으로 이동하여 백운산 일대는 밤에는 ‘반란군’ 낮에는 ‘경찰’ 세상이 되어 무고한 피해자를 수없이 발생시켰다.
당시 옥곡에 거주했던 조영현(전 광양제철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은 “여순 사건 당시 유복자로 태어난 분들이 70세를 넘겼고, 당시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돌아 가시고 있는 마당에, 특별법 제정으로 진상이 규명되어 백운산 일대 유족들의 아픔이 치유 되기를 기대한다” 고 말했다.
<김복곤 국민톡톡TV 회장> <저작권자 ⓒ 국민톡톡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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